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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워달라 말하는 열아흡 개의 영정

  •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qwe2500)
  • 2018-08-22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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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일 동안 이어진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있던 18개의 영정.이들에 대한 합동추모제가 광화문 농성 6주년을 맞은 21일,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열렸다.

 

21일 오후 6시 30분부터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장애인 부모 운동을 해온 고 박문희 활동가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 수용시설 등 3대 적폐로 인해 희생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앞서 광화문 농성 6주년 맞이 3대 적폐 완전폐지 결의대회에 이어 추모문화제에도 참석한 사람들은 고인들을 추모하고, 이들의 뜻을 이어 3대 적폐 폐지와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이 완료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21일,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3대 적폐 희생자 18인의 영정(왼쪽)과 고 박문희 활동가(오른쪽)의 영정이 놓여있다.
 

- 박문희, 현장 중심의 장애인 부모운동을 개척한 사람

 

고 박문희 씨는 2002년부터 장애인교육권연대 활동을 시작으로 장애인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꾸준히 현장 중심 장애인 부모 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2013년부터 몸을 담은 인권교육 기관 '장애와인권바통'에서 활동하던 중 지난해 8월 24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 박문희 활동가 추모문화제 사회를 담당한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조직국장은 "박 활동가는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교육권연대라는 단체를 앞장서서 만들었고, 특수교육법을 만들고 그 보장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던 분"이라며 "늘 현장의 앞에, 함께 했던 분이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한 장애인 활동가가 국화꽃을 들고 있다.
 

김혜미 부모연대 서울지부 고문은 같은 장애인 부모로서 박 활동가와 함께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김 고문은 "언니와 함께 교육권 투쟁을 했던 게 벌써 15년 전"이라며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입을 열었다. 김 고문은 "단 한 번도 언니가 아들을 두고 먼저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라며 "장애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이 우리 모든 부모의 염원이자 막연한 소망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오늘 특히 더 많이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청와대 앞에서 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우리 부모들이 죽으면서까지 죄책감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박문희 '동지'가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모인 동지들이 조금만 더 함께 뛰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고인과 마지막까지 함께 활동했던 '장애와인권바통'의 박효진 활동가는 한 통의 편지를 발언 대신 읽어내려갔다. 그는 "우리 사회는 선생님 떠나신 후 참 많은 것이 변했는데, 우리만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라며 "우리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무엇이 최선인지 헛갈릴 때 늘 길잡이가 되어주시던 선생님의 부재를 요즘 부쩍 자주 실감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박 활동가는 "선생님께서 늘 원하셨던,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라며 "그곳에서도 우리를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열심히 가겠다"라며 말을 맺었다.

 

박문희 활동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장애와인권바통’ 활동가들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우리를 향해 '계속 싸워달라' 말하는 18명의 눈빛

 

2부에서는 3대 적폐(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김주영, 박지우・지훈 남매, 박진영, 장성아, 장성희, 이광동, 김준혁, 최종훈, 송국현, 오지석, 박홍구, 이재진, 박현, 박종필, 그리고 송파 세 모녀. 총 열여덟 희생자들의 영정이 사람들 앞에 놓였다. 이 영정은 모두 광화문 농성장에 놓여있던 것들이다. 

 

양영희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여기 계신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영정으로 남은 분 중 많은 사람은 광화문 농성이 시작될 때 우리와 함께였다. 3대 적폐가 조속히 폐지되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도 함께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많다"라며 안타까움과 함께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했다. 양 회장은 "지난해 8월 25일, 농성장을 찾은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더이상 이런 허황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라며 "그러나 당시 박 장관과 협의해 만든 각종 '민관협의체' 운영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아직까지 아무것도 완전히 해결된 것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더이상 우리의 생존과 안전한 삶이 예산과 맞바뀌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그 누구도 영정에 담긴,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처럼 허황되게 보내지 말자.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추모공연을 준비한 지민주 문화활동가는 "오늘 추모곡을 준비해왔는데, 영정사진들을 보는 순간, 투쟁가를 불러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라며 "어떤 슬픈 노래로도 이 슬픔을 위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 활동가는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을 또다시 영정으로 만나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투쟁이 계속되어야 한다"라며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를 불렀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아래 빈사연) 활동가는 "지난 2013년, 박진영 님의 사망 사건 당시, '장애가 다 나아서 국가로부터 괜찮다는 판정받은 걸 왜 구청에 가서 생떼를 쓰냐'는 내용의 글이 SNS에 실린 것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그 글에 동조하는 것이 충격으로 남아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고 박진영 씨는 '장애 등급 외' 판정을 받아 기초생활 수급권을 박탈당하자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주민센터를 찾아가 칼로 스스로를 찔러 사망했다.

 

윤 활동가는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국가가 정한 기준이 합리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프고 화도 났다"라며 "국가가 제멋대로 정한 기준의 대표가 바로 부양의무자기준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기초법 한 줄, 한 글자가 바뀔 때마다 빈사연으로 많은 문의 전화가 온다. 그때마다 수많은 조건을 달아 답변해야 해 정말 속상하고 애가 탄다"라며 "국가가 멋대로 정해놓은 기준에 생과 사를 오가는 이 많은 사람을 보면, 정말 이 기준이 '합리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강해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활동가는 "가난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지우는 이 불합리가 완전히 폐지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해가자"고 촉구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장애인 수용시설 희생자를 위한 추모 발언을 부탁받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추모는 고인을 다시 그려가는 것인데, 수용시설에서 죽어간 분들이 어떤 눈을 갖고 있고,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곳에 발을 디디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조 활동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조 활동가는 "그러나 다시 생각했을 때, 수용시설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단지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아직도 1400개 수용시설에서 살아가는 3만 명의 사람들, 합법적으로 평생 사회로부터 격리·수용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같은 시설에서 매일 같은 천장을 보는 사람들의 삶과 세월을 돌이켜보는 것"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이제 더이상 국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탈시설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가져선 안 된다. 복지부 장관부터 대통령까지 약속한 '탈시설'을 '커뮤니티 케어'라는 추상적인 언어로 뭉뚱그리지 말고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3대 적폐가 언제 폐지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842일의 투쟁을 이어간다는 것이 정말 막막하고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 때가 많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박 대표는 "그러나 장애등급제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그리고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그들의 눈빛을 볼 때마다 도망갈 수가 없었다. 매일매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 눈을 보면 도저히 '여기까지 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이 영정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폐지된 것이 없다고. 완전한 폐지 때까지 싸워달라고. 여러분,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투쟁 역시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함께 투쟁하시겠습니까."

 

박 대표의 질문에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제히 "네"라고 큰 소리로 화답했다. 추모문화제가 끝난 후, 헌화하는 이들 앞에 열아홉 개의 영정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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