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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매매 후 복귀하는 사회 에 관해 몯다.

  • 뽀빠이  (qwe2500)
  • 2019-07-26 11: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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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거의 끔찍한 화재사건은 2000년대 들어 성매매 집결지에서 반복되었다. (물론 공식 기록되지 않은 성매매 집결지 화재사건은 무수히 많다) 2000년 9월 19일에 군산시 대명동의 속칭 ‘쉬파리 골목’의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하였다. 그리고 2002년 1월 19일 ‘쉬파리 골목’과 인접한 군산 개복동의 유흥주점에서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또다시 발생했다. 기록에 따르면 “전체 26평에 불과한 2층에만 1평이 조금 넘는 쪽방이 무려 7개가 설치”되었고, “내부 통로는 60~80㎝에 불과해 겨우 한 명만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고 한다. 업소 “창문과 출입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안과 밖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 자물쇠가 설치되어” 이러한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2)  화재 현장에서 여성들이 쓴 각종 각서가 발견되었으며, 여성들의 탈출을 막은 쇠창살까지도 여성들의 빚으로 설치한 것이라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두 건의 화재사건은 사회로부터 ‘격리’ 당하거나 업소에 ‘고립’되어온 성판매 여성들이 경험해온 이중의 어려움을 드러낸다. 지난 연재 글에서 김순남은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요보호자’에 대한 원가족의 동의가 요구되는 순간, 혹은 시설 종사자들을 엄마, 아빠라고 호칭하는 장면을 드러내며 “가족의 얼굴을 띤 강제적 친밀함”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3) 이에 더해 성매매 업소에서 엄마, 아빠, 이모, 삼촌의 호칭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성매매 여성들이 처한 “이중의 어려움”이 이해될 것이다. 이에 여성주의자들은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사건 이후 이러한 구시대적 시설을 변화시키고 극복하고자 앞장섰다. 성매매 업소라는 ‘수용소’에서 시설이라는 또 다른 ‘수용소’로 여성들이 이동하지 않도록 성매매피해여성에 대한 지원시설, 거주시설을 민주화하는 것은 여성주의적 활동의 연장선이었다.

 

여성단체의 NGO화, 여성운동의 전문직화

 

문제는 여성주의적 액티비즘을 통해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지원 활동이 큰 수준에서 변화하였으나, 세상도 변하고 성매매 업소의 운영방식도 변했다는 것이다.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사건이라는 끔찍한 사회적 재난 이후 구시대적 시설은 개선되어야 할 요구에 직면하였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의 중심에는 피해 여성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전문 인력”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기술교육 중심의 재활이 아닌 전문 카운슬링 등 치료위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이 대표적이다.4) 윤락행위등방지법도 개정되어 이제 과거에 오직 정부에서 설치 가능했던 시설은 이제 사회복지법인과 비영리법인에 의해 설치, 운영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사건이 발생한 1995년은 베이징 세계여성대회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는 당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가 “여성인권은 인권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 연설은 문장만 놓고 보면 틀린 것이 하나 없는 연설이지만 이 시기 진행되었던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제3세계 여성들을 착취적으로 동원하였기에 힐러리의 연설이 전세계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어쨌든 이러한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이후 “여성인권은 인권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성 주류화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도 이 직후 본격적으로 여성 이슈가 정부 이슈에 포함되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1998~2003년)는 이러한 성 주류화 정책을 선도적으로 견인했다. 김은실은 성 주류화 정책으로 여성학과 졸업생들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대학들이 여성학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설하게” 된 것을 가리켜 “역설적이게도” 여성학 프로그램이 “좋은 비즈니스”로 여겨지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5) 국가는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여성 문제 해결을 제도화하고자 했고 이 과정을 거쳐 풀뿌리 여성단체들은 NGO로 전환되었다.6)

 

여성운동 단체는 문제의 원인을 전문적으로 진단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면서 문제를 해결할 도구를 내놓아야 했다. 이때 여성운동은 전문화의 기반을 착실하게 닦아 놓은 사회복지 실천과 만나게 되었다. 여성운동의 역사와 활동 경험은 사회복지 프레임 안으로 흡수되었고 여성(주의)운동으로서의 상담활동은 사회복지기능으로 축소되게 되었다.7) 성매매 문제 역시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해야 하는 전문성과 신속함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되었다. 성매매로 인해 여성 개인이 경험하는 문제는 사회복지 제도가 제공하는 전문적인 상담과 적절한 서비스 프로그램에 의해 ‘치료’되고 ‘회복’되어야 하는 문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성매매와 관련된 새로운 정체성이 등장하였다. 바로 “탈성매매 여성”이라는 범주이다. 이들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탈성매매(를 위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이들을 지칭하는데, 이제 성매매피해여성들은 요보호여성의 경우처럼 추방되거나 격리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공적으로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 여성이 되었다.

 

이 시기를 지나며 성매매 업소의 운영방식도 변화하였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선불금이 무효가 된 사례가 증가하면서 업소에서는 업주가 여성들에게 직접 건네주는 방식의 선불금을 기피하게 되었다. 동시에 한국 경제의 금융적 전환의 과정을 지나며 금융권에서 개인에게 지급하는 대출의 규모가 전례 없이 커졌다. 이전 시기 업주와 여성의 대면적 관계에서 지급되던 선불금은 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대출로 전환되었고 여성들은 자신을 직접 구속하는 인물이 사라지고 제도화된 금융 시스템 안으로 진입하게 되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자유’를 경험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물론 이때의 자유는 성산업 안에서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하는 신용이 만들어놓은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임은 틀림없다.8)

 

쇠창살이 있고 안에는 사람, 이불, 책 등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인다. 사진 픽사베이
 

사회운동으로서의 탈시설 운동과 페미니즘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성매매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의 ‘주변화된 존재’, ‘비규범적 존재’에 대한 시설 보호 담론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는데 적절하지는 않다는 점을 밝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운동이 NGO화되면서 더 이상 시설에서의 보호는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탈성매매’ 담론은 시설 철폐 담론이 주도하는 ‘사회 복귀’라는 프레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이유로 성매매라는 주제는 탈시설 운동의 미래와 방향을 점검하고자 하는 사유와 더 긴밀하게 만날 수 있다.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자활’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단어로 등장했다. 자활에서 최종 목표는 ‘탈성매매’ 이후 사회적 생존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서비스화된 여성운동의 프로세스를 통해 성매매피해여성들은 성매매로 인한 피해를 치료, 제거하고 성매매 이외의 경제적 생존 수단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다면 여성들이 ‘탈성매매’ 이후 진입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성매매로 인한 피해가 제거되고 신용을 가진 개인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도모할 수 있는 성매매와는 무관한 평등한 경제적 장, 탈매춘화된 장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변화된 금융환경 및 성매매 업소의 운영 방식 안에서 신용은 여성들을 성매매 시장으로 인입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동시에 성매매 산업에서 발생한 이윤과 신용은 또다시 금융화된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보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성매매 접대 관행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최근 한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매매 산업과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제도에 기반한 반성매매 운동은 성매매 여성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자활’의 실천을 통해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판매 여성들이 ‘탈성매매’ 가능하다는 신념에 기반을 둔 지식 생산과 활동은 의도치 않게 성매매 문제가 사회 안에 배태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락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나의 주장은 ‘자활 지원’을 요청하는 많은 여성의 요구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고민하는 시설 폐쇄 담론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 이 주제를 통해, 오히려 이들이 살아가게 되는 ‘지역사회’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보자는 거시적 제안에 가깝다.

 

결국 탈시설 운동은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활동을 넘어 사회운동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일지 모른다. 성매매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이 사회를 문제 삼지 않으면 자활을 통한 사회 복귀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여성운동의 교훈이 이러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주지하다시피 반성매매 운동의 미래는 성매매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있다. 다만 이러한 사회는 개인 여성의 고통을 서비스 제공을 통해 개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익숙한 ‘정상성’이 포함하는 차별, 차별을 통한 성장과 발전, 안전, 자유를 도모하는 활동을 문제 삼는 사회운동, 저항적 사회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바로 이러한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1) 한겨레, “경기여자기술학원 어떤 곳인가: 윤락여성·가출소녀 등 ‘교화’ 수용시설”, 1995.8.22.
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2년 군산시 개복동 화재 참사 사건”,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gunsan.grandculture.net
3) 김순남, “[교차적 관점으로 시설화 비판하기] ⑫ 강제된 장소, 강제된 관계를 질문하는 탈시설 운동”, 비마이너
4) 한겨레, “또 하나의 감옥, 여자기술학원”, 1995.8.24.
5) 김은실, “여성주의 지식의 생산과 제도화의 정치학”,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기획, 한울, 2016, 83-84쪽.
6) 여성운동의 제도화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김경희, “한국여성운동의 참가의 정치: 199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NGO연구』 1권 1호, 2003, 121-146쪽.
7) 윤정숙, “진보적 여성운동의 전환을 위한 모색”, 『창작과 비평』 제125호, 2004, 67쪽.
8) 관련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김주희, “여성 ‘몸-증권화’를 통한 한국 성산업의 정치경제적 전환에 대한 연구”, 『경제와사회』 111호, 2016, 142-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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