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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운동가 황정용 1주기… “탈시설 투쟁 이어갈 것”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故 황정용 추모제 열려
장애계, “마로니에 8인 뜻 이어 탈시설 투쟁 이어갈 것”
 
등록일 [ 2020년07월14일 19시38분 ]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이 마로니에 8인, 고 황정용 씨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13일 오후 6시 반 유리빌딩 4층에서 고 황정용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탈시설 운동의 큰 손이 되고 싶다’고 외친 고인을 기리며 탈시설 투쟁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다.
 
지체장애가 있던 황 씨는 중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하던 도장 파는 기술을 이어받아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장애가 있는 여동생 2명, 배다른 남동생 2명을 부양하며 살았다. 그러다 장애가 점점 심해져서 2007년 1월 동생에 의해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하게 됐다.
 
그가 들어간 베데스다요양원은 석암재단 산하 시설이었다. 석암재단은 서울시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으로 회계부정과 시설 장애인의 감금과 폭행, 금품 갈취 등 시설비리의 온상이었다. 이에 석암베데스다요양원 거주 장애인들은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며 재단의 비리를 폭로했다. 석암비대위는 2008년 1월, 검찰에 석암재단을 고발하고, 서울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처벌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이사장은 구속되고, 시설장은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시설비리 투쟁에도 시설 장애인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의 시설비리 투쟁은 탈시설 투쟁으로 이어졌다.
 
2009년 6월 4일, 고인과 거주인 7명은 시설에서 나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62일간 노숙 농성을 하며 서울시에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했다. 이른바 ‘마로니에 8인’ 투쟁이다. 이 투쟁으로 서울시에는 탈시설전환지원센터와 자립생활주택, 탈시설 정착금 등 탈시설 정책의 초석이 마련됐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 광주, 대구, 전주, 인천 등 지역에도 탈시설 정책이 수립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뒤 황 씨는 2017년 10월 서울시 자립생활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해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는 탈시설 당사자로서 탈시설 투쟁 참여를 비롯해 탈시설 장애인들의 멘토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2012년 7월 개소한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함께 설립하기도 했다. 황 씨는 활동을 이어가던 중 2019년 7월 13일 새벽 자택에서 향년 60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

 

최진영 장애해방열사단 사무국장은 ‘황정용 동지가 묵묵히 투쟁해온 정신을 되새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투쟁하자’라고 전했다. 사진 박승원
최진영 장애해방열사단 사무국장은 “황정용 동지가 2009년 마로니에 8인과 함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처음 노숙농성을 했을 때, 언제 끝날지 모를 노숙 농성을 결심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라면서 “황정용 동지가 탈시설 투쟁을 묵묵히 해온 정신을 되새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투쟁하겠다. 훗날 술을 좋아하던 황정용 동지와 만나 맛있는 투쟁의 승리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고 싶다”라고 그리움을 전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고인을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마음이 깊고 정이 많았던 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정부가 탈시설을 주장하는 우리들의 요구가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설에서는 하루하루 돌아가시는 분이 생기고, 탈시설 뒤에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탈시설-자립생활 투쟁을 이어가라고 황정용 동지가 우리에게 만들어준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고인의 뜻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추모제를 마친 이들이 고 황정용 씨 영정 앞에 모여 헌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박승원 기자 wony@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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