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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 비범죄화’ 캐나다, 신체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4월 11일 형법 ‘낙태의 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정한 개정 입법 시한이 이제 4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올해 12월 31일이 지난다면 임신중지에 대한 형법상의 처벌 조항들은 그대로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 사실상 임신중지에 대한 전면적인 비범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캐나다는 1988년 1월 ‘여왕 대 모겐탤러 사건[R.(Her Majority The Queen) v. Morgentaler]‘에서 연방 대법원이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형법251조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이후 다른 개정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별도의 관련 법이 없는 비범죄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비범죄화’란, 특정한 법적 조건 하에서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행위에 대한 어떠한 법적 규제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캐나다에는 임신중지를 한 당사자나 의료인, 관련 보건의료 종사자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규제 조치로 두고 있는 합법적인 주수나 사유에 대한 제한, 의무 숙려 기간, 임신중지 여부에 대한 의무 상담 제도, 제3자의 동의 의무 규정 등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항간의 우려대로 임신중지율이 크게 증가하거나 후기 임신중지가 늘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캐나다의 임신중지 건수는 2018년 기준 8만 5천 건 정도이고, 15세에서 44세 사이의 인구 1천 명 기준 11.7% 정도로 같은 기준에서 한국의 임신중지율인 15%보다 낮다. 이 중 89%는 임신 12주 이내에 임신중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21주 이후의 임신중지는 연간 659건으로 전체 임신중지 건수의 0.7% 정도에 불과하다.[1] 캐나다의 사례는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법적 규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들이 무엇인지, 이후 보건의료와 사회 전 영역에서 어떠한 노력과 실질적인 보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를 참조하는 데에 좋은 선례가 된다.

 

따라서 이후 한국에서 필요한 일들을 준비하기 위해 2회에 걸쳐 캐나다의 사례와 시사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임신중지 비범죄화 과정에서의 구체적 쟁점과 법적 논의를 살펴본다. 이 글은 지난해 윤정원 셰어 기획운영위원과 함께 토론토와 밴쿠버의 연구자와 의료인, 활동가를 만나 진행한 인터뷰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1988년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있기까지

 

캐나다는 1803년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엘렌보로법(Lord Ellenborough’s Act)’에 따라 태동에 상관없이 임신중지를 처벌하다가 18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892년 형법에서 임신중지를 살인죄로 보고 종신형에 처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이후 임신중지를 도왔던 간호사, 의사 등 여러 의료인들이 기소되었고, 1961년 처음으로 캐나다의료협회의 브리티시콜롬비아 지회에서 임신중지 처벌 조항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며 나섰다. 이후 캐나다변호사협회 등도 함께 개정 요구에 나섰고, 1967년 영국에서 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한 법안이 통과되자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법무부 장관도 의료적 필요에 따른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형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69년 5월, 피임 합법화와 함께 임신중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 따르면 임신중지는 반드시 면허를 보유한 의사에 의해, 승인받은 병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적어도 의사 세 명으로 구성된 ‘치료적 임신중지 위원회 (Therapeutic Abortion Committees, TAC)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치명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경우에 한해서만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당연히 이는 극도로 제한적인 법이었고, 의료인들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한 경우‘를 의사가 서면으로 보증해야 했기 때문에 막대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밴쿠버여성회의(Vancouver Women’s Caucus, VWC)는 전국적으로 순회 투쟁을 벌였고, 1971년에는 모겐탤러라는 의사가 처음으로 불법 임신중지를 이유로 입건되었다. 이후 1심의 배심원단은 모겐탤러에게 무죄를 평결했으나 1974년 퀘백항소법원은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고 징역 18개월의 유죄를 선고했다. 모겐탤러 사건은 캐나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곳곳에서 모겐탤러를 지지하면서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모겐탤러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임신중지 지원을 하다가 1983년 동료 의사들과 함께 다시 기소된다. 그리고 마침내, 1988년 연방대법원에서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형법251조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결정 이후에도 상황이 원만하지만은 않았다. 각 주의 지방 정부들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반발하여 새로운 규제를 만들었고, 처벌 조항을 되살리려는 입법안도 여러 차례 의회에 올랐다.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의료인과 진료소에 대한 폭력과 테러도 잇따랐다. 모겐탤러의 토론토 진료소는 폭탄 테러를 당했고, 밴쿠버의 한 의사도 흉기에 찔렸다. 모두 미국에서 조직된 프로라이프 단체들의 행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방 차원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을 다시 규정하는 법안은 번번이 부결되었고 제출된 총 46개의 법안 중 어떤 것도 통과하지 못했다.

 

1988년 연방대법원의 결정 : 불공평, 임의적 적용, 신체 안전을 근거로 삼다

 

토론토대학 법학대학의 레베카 쿡(Rebecca Cook) 교수는 1988년 연방대법원의 결정에서 사용된 헌법상의 개념 중에 이후에도 지속해서 영향을 미친 세 가지를 ‘불공평(unfair)’, ‘임의적 적용(arbitrary application)’, ‘신체의 안전(security of person)’이라고 짚었다. 이 점은 프라이버시권을 중심으로 임신중지의 권리를 주장했던 미국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과 중요하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의 개념이 임신중지 처벌 조항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데에 중요한 근거로 언급된 데에는 일명 ‘베즐리 리포트(Badgley Report)’라고 불리는 ‘낙태법 시행에 대한 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Committee on the Operation of the Abortion Law)’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보고서는 1977년에 제출된 것으로, 1969년 제정된 법에 따라 ‘치료적 임신중지 위원회’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만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오히려 이 절차로 인해 후기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건강상의 문제로 임신중지를 해야 했던 여성 중 45%의 여성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병원이 너무 작아서 위원회 자체가 없거나, 위원회가 있는 경우에도 의사 대신 천주교 신부가 위원으로 들어가서 절대로 승인을 해주지 않는 상황을 겪었다. 중요한 점은 연방대법원에서 임신중지 처벌법의 규제 자체가 이런 상황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즉, 법이 ‘치료적 임신중지 위원회’의 승인 절차를 둠으로써 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에도 공평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있고, 각 지역이나 병원, 종교적 목적에 따라 임의로 적용되어 오히려 신체의 안전을 침해/박탈하고 있다는 것이 이 판결의 핵심 요지였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은 신체의 안전을 침해하는 법의 제약 자체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어떠한 내용이든 그것이 실제 현장에서 불공평하고 임의로 적용되어 신체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현재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조건에서도 각종 제약을 두고 있는 각국의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권 자체가 신체의 건강권, 안전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권리이며 의료적, 사회적 조건이 불공평하고 임의적으로 적용되는 현실에서는 온전히 보장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신 주수나 사유에 따른 허용, 임신중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막기 위한 상담 의무제, 의무 숙려기간 제도, 파트너나 제3자의 동의 의무화 등은 모두 이러한 임의적 적용의 문제가 있다. 지난 3~40년간 이러한 규제를 두었던 나라들도 이 규제들이 오히려 안전한 임신중지의 시기를 늦추고 여성의 건강을 해친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규제를 없애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1988년 판결에서 ‘신체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제시했다는 점은 이후 제기된 여러 소송과 처벌법을 되돌리려는 입법 시도에서 임신당사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검토하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1989년 퀘벡에서 있었던 ‘트렘블래이 대 데이글(Tremblay v. Daigle)’ 사건에서는 1988년 판결 이후에도 아직 쟁점으로 남아 있었던 태아의 권리문제를 놓고 중요한 판결이 이루어졌다.

 

당시 데이글의 임신 사실을 알면서도 데이글을 폭행했던 트렘블레이는 보다 안전한 여건이 되었을 때 아이를 키우고 싶었던 데이글이 임신중지를 하려고 하자 자신은 태아의 권리를 지키겠다며 임신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데이글은 트렘블레이의 폭력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안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데이글은 미국에 가서 임신중지를 해야 했고, 대법원까지 가서야 이에 대한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태아가 법적 인격과 유사한 대우를 받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법적 권리를 동일하게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남편, 남자친구, 생물학적 아버지들은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여성의 신체적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2]

 

1988년의 판결과 이를 근거로 한 관련 사건에서의 일관된 결정은 법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보건의료 정책과 의료 환경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처벌이 아니라 권리의 보장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증거를 계속해서 축적해 왔다.

 

다음 호에서는 캐나다의 보건의료 정책과 의료 환경에서의 노력, 연령이나 장애 여부 등이 아니라 당사자의 자기 결정과 동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원칙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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