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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공학 기기와 나의 삶, 욕망에 대하여

- 나는 일생일대 대형 사고를 치기로 했다

 

몇 달 전에 대형 사고(?)를 쳤다. 나조차 그런 사고를 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칼럼에서 병원 입원 생활에 대해 썼는데 그 영향을 받아서 사고를 쳐버렸다. (29일간의 병원 생활 ①부 “아이고, 허리야” 중증장애인의 입원 수난기 ②부 최첨단 재활 치료와 몸에 대한 환상)
 
사실 병원 입원 전에 허리 통증이 심각했다. 출퇴근은 간신히 했지만 중간중간 화장실 가기 위해 일어설 때마다 허리 신경이 차라리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그런 상황에서 병원 입원을 했고 치료받으며 통증이 호전되는 걸 느꼈다. 그러나 퇴원 후 다시 통증이 심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다시 통증이 생기면 사회활동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삶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몸을 수시로 움직여 통증이 완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로 말이다.

 

-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필요해

 

통증이 호전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장시간 앉아 있는 시간을 줄여서 매일 허리를 펴고 기립 자세를 유지해 주는 데 있었다. 평소에 나는 잠자는 시간과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전동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한다. 이 생활이 15년 넘게 이어지니 허리 통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활에 변화가 필요했다. 일주일 한 번의 물리치료는 부족했고, 활동지원사에게 전신 스트레칭을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한 끝에 찾은 것은 고가의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다기능 전동휠체어만 있다면 병원 갈 시간을 따로 낼 필요도 없고 누구의 도움 없이 버튼 하나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이 생각에 이르자 일단 ‘일을 치자!’라는 결단이 내려졌다. 물론 경제적인 타격은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 전동휠체어를 구입한 지 1년밖에 안 돼서 또다시 교체한다는 것은 부잣집 자식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 시선도 신경 쓰였다. 대체로 주변 신경을 덜 쓰는 편이지만 이번 전동휠체어 구입은 남의 시선이 걱정되었다.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나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기능 전동휠체어 기능 중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기능들이 많다. 우선 엘리베이팅 기능(좌석 높낮이 조절)이 있는데 이 기능을 작동함으로써 비장애인과 시선을 맞출 수 있고(종종 비장애인이 무릎 꿇고 휠체어 사용자 시선에 맞추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비장애인이 휠체어 사용자에게 배려를 엄청 해 주는 것처럼 미화되는 일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높은 물건이나 스위치 사용이 가능해진다. 리클라인 기능(등받이 경사 조절)은 등받이 각도가 조절되는 기능인데 온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이 잠시 쉴 수 있게 해 준다. 이 밖에 다양한 기능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기능은 ‘스탠딩 기능’으로 버튼 하나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능이다.

 

나는 허리 통증뿐만 아니라 기립성 저혈압도 심해서 가끔 화장실 갈 때 응급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립성 저혈압 때문에 마음이 늘 불안했다.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기립 운동을 자주 하니까 혈압도 안정되었다. 이때부터 스탠딩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이유가 점점 추가되어 갔다.

 

- ‘이 전동휠체어는 얼마예요?’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말문이 막히는 이유

 

내가 말하는 다기능 전동휠체어는 유럽에서 제작한 제품이다. 가격은 3800만 원이다. 가격을 밝힌 이유는 앞에 써놓은 걸 읽으면서 혹시 구입할 마음이 생긴 분들이 수고스럽게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가격 때문에 결국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격을 본 순간부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나 역시 휠체어 업체에서 처음 이 제품과 가격을 접했을 때 ‘나는 절대 못 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병원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는데 뭔가에 홀린 듯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고 싶어졌다. ‘까짓 인생 뭐 있나! 아프면 어차피 혼자 감당해야 할 무게만 쌓일 텐데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다 죽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꽂혔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생전 처음 은행에서 대출 상품을 알아봤다.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까지 알아보다니! 남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허나 질병이나 사고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지금처럼 더는 생활할 수 없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에게 다기능 전동휠체어는 이런 맥락이었다. 내 스스로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존 전동휠체어를 처분한 돈과 대출받아서 마련한 돈 등을 합쳐서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입했다. 전동휠체어 구입 후 대출 금액 때문에 살짝 후회도 되었지만 이제까지 대체로 만족스럽게 타고 있다. 허리 통증도 줄어들었고 실생활 접근성도 좋아졌다.

 

현재 사는 곳의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가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과거에는 혼자 들어가려면 팔을 높게 올리는 시도를 여러 번 해야 겨우 성공하거나, 활동지원사가 내려와서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탄 뒤로는 엘리베이팅 기능을 이용해서 혼자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처음에 이 기능을 이용해 공동 현관문을 통과했을 때, 너무 짜릿했다.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부분이 정복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다 편한 것은 아니다. 바퀴 구동 방식이 기존 전동휠체어가 주로 사용하던 방식과 달라서 고생을 좀 했다. 보통 한국에서는 후륜방식(큰 바퀴가 뒤쪽에 장착된 방식)의 전동휠체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외국은 중륜(큰 바퀴가 중간에 있고 작은 바퀴가 앞뒤로 두 개씩 장착된 방식)이나 전륜(큰 바퀴가 앞에 장착되어 있고 작은 바퀴가 뒤쪽에 있는 방식)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내가 산 다기능 전동휠체어는 전륜 방식이라 운전이 쉽지 않다. 회전 반경이 예상하는 것과 다르게 작동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좁은 공간에서는 운행이 어렵다. 특히 전체 길이가 보통 전동휠체어보다 조금 더 길어서 지하철의 작은 엘리베이터는 탈 때마다 곤욕스럽다. 처음 몇 주는 ‘애물단지를 빚내서 산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되었다.

 

-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 뒤로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도 많이 받고 있다. ‘돈이 많아서 돈 자랑하려고 샀겠지’라는 말투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책 없이 사는 사람으로 취급될 때도 있었다. 부르주아 특권층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장소에 따라 작동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구입 전에 예상은 했었다. 나는 빚이라도 내서 살 수가 있지만, 빚도 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을 생각한다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라고 생각도 한다. 누군가 전동휠체어 가격을 물어올 때마다 스스로 위축감이 드는 이유다. 남의 것을 몰래 훔쳐서 타는 것도 아닌데 떳떳할 수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이미 많은 장애인들이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전동휠체어가 아직도 ‘잘 굴러가고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이미 다양한 몸에 맞춰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갖춘 제품들이 많이 출시되어있는 것이다. 하루 반나절 이상 내 몸에 붙어 있는, 떼어낼 수 없는 신체 일부분이라 생각한다면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처럼 그저 ‘네 바퀴 달린 의자’로 취급되어 거의 10년째 동결 중인 정부 지원금은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반영해 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 나를 더욱 당당한 삶으로 이끌어 준 보조공학 기기들

 

전동휠체어 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조공학 기기 대부분이 수입품이라 가격대가 비싸다. 가격 때문에 필요해도 구입할 수가 없다. 보조공학센터에서 임대 사업도 하지만 보통 대여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정해져 있어서 대여 기간이 끝나면 다른 제품의 기기로 다시 대여해야 해서 불편하다. 새로운 기기에 몸을 다시 적응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번거롭게 느껴져서 나는 이용을 중단했다.

나는 예전부터 보조공학 기기에 관심이 많았다. 독립하고 나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사비를 털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상당 부분 자동화로 바꿨다. 그 결과, 어느새 집은 리모컨 천국이 되었다. 리모컨만 열 가지다. 가전제품 대부분 리모컨이 있는 것으로 구입했고, 현관문도 지문이나 리모컨으로 열 수 있게 했다. 창문 블라인드도 리모컨을 이용해서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해놨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방에서 날씨 확인도 불가능했는데 전동 블라인드 설치 후부터 밤에 답답하면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방에 형광등은 스마트폰 앱으로 켜고 끌 수 있다. 활동지원사가 퇴근할 때 불을 끄고 가면 컴컴한 방에서 오로지 TV(티브이) 불빛에만 의지해 지냈는데 이제는 환한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불을 끄고 싶을 때 끄면 된다.

 

이중 나의 ‘최애(가장 사랑하는)’는 전동침대다. 10년도 넘은 제품인데 복지관에서 정말 운 좋게 지원받아서 지금껏 잘 사용하고 있다. 일반 침대에서는 활동지원사가 밤에 눕혀주고 가면 다음 날 아침까지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전동침대가 생긴 뒤부터 혼자 누워서 자고 싶으면 자고 앉아 있고 싶으면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최첨단 기계들은 독립적인 삶을 더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 장애인 ‘인권’이 빠진 최첨단 기계와 광고는 이제 그만!

 

최근 이동통신마다 최첨단 인공지능과 AR(증강현실) 서비스 등을 내세우는 광고를 많이 내보내고 있다. 하나같이 광고에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광고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전달되는 메시지는 똑같다. 최첨단 기기와 서비스가 ‘장애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스마트 기기 광고에 비장애인이 등장하는 경우, ‘비장애인이 게으르고 능력이 없어서 이 제품이 필요하다’고 광고하진 않는다. 오로지 장애인이 등장하는 광고에만 장애가 결점처럼, 강하게 부각되어 나온다. 광고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다기능 전동휠체어도, 다른 최첨단 기기들도 내 장애가 약점이라서 보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욕구를 조금 더 자유롭게 채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편리하게 활용하고 싶어서 이용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말이 이동통신사 광고 메시지와 뭐가 다른지 이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SK(에스케이)텔레콤 광고에 나온 휠체어에 탄 장애인처럼 작은 턱 때문에 친구들한테 미안해하며 보고 싶은 곳도 안 봐도 괜찮다며 혼자 우두커니 증강현실서비스를 이용하는 착한 장애인 흉내를 낼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광고로 만들어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도 없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고 떠들어봐야 나에게는 낡아빠진 장애인식을 전파하는 골동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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