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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휠체어 탄 장애인 “고양시에서 집에 갈 방법 없어서 농성해요”

턱없이 낮은 저상버스 도입률, 장애인은 시외 이동도 어려워
김현미 장관, 2018년 장애계와 약속한 ‘이동권 보장 선언문’ 잊었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9일 김 장관의 집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천막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님, 15년을 기다렸습니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만나서 대화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자가 써진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강혜민

추석 연휴 전날인 29일,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집 앞에 모였다. 김 장관의 집은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의 한 아파트이다. 김 장관이 사는 단지에는 총 8동의 아파트가 있으며 693세대가 산다. 이날 장애인들에게 일산서구까지 오는 길이란 무척 고되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콜택시(아래 장콜)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이다. 비장애인이라면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하여 이곳까지 올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인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근접한 지하철역은 경의중앙 탄현역과 3호선 대화역이나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탄현역까지는 1.8km, 대화역까지는 3.7km이다. 탄현역에서는 덕이동까지 오는 저상버스가 아예 없다. 대화역에서는 저상버스 두 대(900번, 56번)가 있지만, 저상버스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서 ‘서울시 장콜’을 타고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문제다.

 

“고양시에도 장콜은 있는데 집에 갈 때 못 타요. 어제 전화해서 물어보니 저녁 6시 이후에는 예약제로 운영한다고 해요. 게다가 고양시 바깥으로는 야간에 아예 나가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이따 결의대회 끝나고 저녁에 문화제까지 하고 나면 집에 갈 교통수단이 없으니 여기서 잠을 자야지.” (이형숙 회장)

 

김 장관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이날 천막 한 동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막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님, 15년을 기다렸습니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주십시오. 만나서 대화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자가 써진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장애인들은 추석 연휴 동안 김현미 장관을 기다리며 노숙 농성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동휠체어를 타고 온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 사진 강혜민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은 평소에는 전동휠체어를 타지만, 오늘은 수동휠체어를 타고 왔다. 전동휠체어는 그 스스로 운전해서 이동할 수 있지만 수동휠체어는 누군가 밀어줘야만 움직일 수 있으니, 그로서는 ‘정말 타고 싶지 않은’ 보장기기다. 그러나 이곳에 오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타고 온 센터 차량은 휠체어 탑승장치가 없는 일반 승용차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집에 갈 수 있겠지만 차에 탑승할 때 휠체어에서 몸을 분리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는 “여기까지 저상버스도 없고, 장콜도 오는 건 되는 데 집에 가는 게 안 되지 않냐”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휠체어 탄 장애인들은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오기도 쉽지 않다. 다른 지역은 더 심하다.

 

이날 오후 3시 30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하는 집중 결의대회를 연 이유다.

 

이날 장애인들은 여전히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알리며, 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2001년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난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왼손에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개정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투쟁을 외치며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결의대회에서 이형숙 회장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우리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이동하고 싶다”고 외치며 “왜 장애인은 대중교통수단을 비장애인들과 함께 이용할 수 없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우리는 200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을 계속해서 요구해왔다. 2018년 김현미 장관이 장애계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다시 한번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면담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다“면서 ”추석 연휴 동안 이 자리에서 천막치고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휠체어 탑승설비가 있는 센터 차량으로 오늘은 편하게 왔지만 평소 일산에 있는 다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방문할 때면 지하철을 이용한다.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시외버스도 없고, 장콜은 평균 두 시간가량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그는 김포 사우역에서 두 번 지하철을 환승해 서울역에 와서 다시 3호선으로 갈아타서 일산까지 가야 한다.

“우리 장애인들은 집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려고 해도 이동할 차가 없어요. 비장애인은 30분이면 갈 거리를 장애인은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한 시간 기다려서 버스가 와도 리프트가 고장 났다고 안 태워주고 그냥 갑니다. 그러면 또다시 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는 서울에서 저상버스를 세 대, 네 대까지 그냥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날 비장애인이면 15분이면 갈 거리를 네 시간이나 걸려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내일은 추석입니다. 비장애인들은 추석 때면 선물 들고 줄지어 고속버스 타는데, 장애인들은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저상버스가 없어서 고향에 갈 수 없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오늘 김현미 장관 만나서 반드시 이동권 보장받고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겠습니다.” (김진수 소장) 

 

문화노동자 이혜규 씨가 결의대회에서 투쟁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고양시 일산에서 활동하는 정명호 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비장애인으로 30년을 살아가 2000년 사고로 사지마비장애인이 됐다. 장애인이 된 후 9년을 집에 틀어박혀 살다가 2009년에 장애인운동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이동권 때문이었다. 어렵게 집에서 나왔는데 막상 이동하려고 하니 어떠한 이동편도 없었다. 고양시에는 2010년에야 장콜이 생겼다”면서 “10년 넘게 이동권을 요구해왔는데 다시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게 비통하다”고 전했다.

 

정 소장은 “고양시에서는 오후 5시만 넘어도 장콜 잡기가 어렵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2월 시장 면담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를 이유로 계속 미뤄져 이제 곧 연말이다”라면서 “그러면서 시에서는 센터 사업평가, 지도점검은 꼬박꼬박 다 하고 있다. 시장 면담은 코로나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데 센터 점검은 코로나 영향을 안 받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결의대회를 하는 장애인들 곁으로 휠체어 탄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국토부는 ‘교통약자법’ 제정 이후 5년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에서는 전국 시내버스 저상버스 도입율 목표를 42%로 삼고 있다. 2차 때(2012~2016) 목표치는 41.5%였다. 2차 도입률이 미미하니 3차 계획에서도 목표치를 동일하게 잡은 것이다. 그러나 2019년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여전히 26.5%(9016대)에 불과하다. 2018년에는 23.4%(8038대)였다. 경기도의 경우, 저상버스 보급률은 13.6%로, 17개 지자체 중 충남(9.3%), 울산광역시(12.2%) 다음으로 전남과 함께 세 번째로 가장 낮다. 이는 ‘시내버스만을’ 대상으로 한다. (2019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에는 저상버스가 거의 없다. 지난해에야 휠체어 탑승 가능한 고속버스가 4개 노선에 시범적으로 하루 2~3회의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시외버스도 경기도를 오가는 2층버스에 한정적인 노선에만 매우 적은 대수의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을 뿐이다. 

2019년 장콜도 법정대수에 미치지 못한다. 법정대수는 4697대이나 실제 운행대수는 3457대로 73.6%에 그친다. 게다가 지자체마다 장콜 운영 주체와 운영 방법이 달라서, 장애인들은 미리 해당 지자체의 장콜 이용 시간과 이용 방법을 알아보고 장콜 이용자 등록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장애계는 2014년부터 추석과 설날이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며 시외이동권 투쟁을 해왔다. 지난한 싸움의 결과, 2017년 11월에는 국토부와 ‘장애인 이동권 민관협의체’를 꾸리기도 했으나 2018년 8월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그해 9월 19일 국토부는 “함께 누리는 교통, 누구나 편리한 교통”을 위한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선언문’을 장애계와 공동 발표했으나 선언문의 내용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시 선언문에서 국토부는 △저상버스 보급 확대 △장애인콜택시 표준 조례 제정 △광역이동지원센터 역할 강화 △고속·시외버스에 저상버스 운영 확대 등을 장애계와 약속했었다.

 

이날 전장연은 이러한 약속을 속히 시행할 것을 촉구하며 김현미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장애인 활동가들. 코로나19로 인해 1.5m씩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사진 강혜민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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