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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첫 ‘가족 대신 장례’ 치르다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9월 장례이야기
떡국 끓여주시던 형님

 

9월 중순 무연고 사망자 ㄱ님의 장례를 준비하던 중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서울시의 한 복지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로 “지역에서 오랜 시간 봬왔던, 가족이 없는 독거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 업무를 진행하는 나눔과나눔은 의전업체의 화장 예약에 맞춰 장례를 준비했고, 장례 당일에는 복지관 직원들과 이웃에 살던 지인들이 참석했습니다.

 

2014년 서울의 한 동네로 이사를 온 후 ㄱ님은 당시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주변 지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고, 지난 8월 말 사망하기 전까지 6년 동안 각별한 정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어르신이 지역의 다른 어려운 사람들 도우라고 받으시는 수급비 중 일부를 후원해오셨어요. 몸이 불편한 중에도 도움을 받기보다는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고자 하셨던 분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 분이세요.”

 

서울시립승화원 화장로로 운구가 시작되자 지인들이 오열했고, 고인 예식에서 대표로 조사를 읽었던 사회복지사는 울먹이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꺼냈습니다. 영정사진 속 밝게 웃고 있는 ㄱ님은 함께 사과농장에 갔을 때 찍은 사진으로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형님 집에 커피 마시러 자주 놀러 갔었어요. 형님이 식사를 혼자 드시기 싫으실 때면 떡국을 잔뜩 끓여서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나눠 먹었어요. 고기도 많이 넣으셨어요.”

 

지인분은 정이 많았던 ㄱ님이 사망한 후 같이 모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게 된 것을 못내 아쉬워했고 우울증에 힘들어하기까지 했습니다.

 

ㄱ님의 서류상에는 이복형제가 있었지만 오랜 단절로 시신 위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오랜 세월 혼자 살다 생의 마지막 6년을 함께한 지인들과 서로 쌓아온 정이 깊고 진했던 만큼 그의 부재는 남은 이들에게 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ㄱ님의 유골은 승화원 유택동산에 뿌려졌고, 지인들은 그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아내의 남편 장례에 참석한 사실혼 관계의 남편. 사진 나눔과나눔

 

- “저는 무연고 사망자의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9월 말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나눔과나눔으로 한 통의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무연고 사망자의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아내가 장례식에 못 가는데…….”

 

긴 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나니 메모를 하지 않았다면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사연이었습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아내의 남편이 사망했고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아내는 여러 사정으로 장례에 참석할 수 없다. 아내에게는 사망자와의 사이에 자녀들이 있는데 지금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훗날 자녀들을 생각해 사망자의 유골을 화장 후 봉안하기를 요청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긴급하게 해당 지자체에 무연고 사망자가 확정된 사유를 문의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ㄴ님은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사례관리 대상자로 보호를 받다 지난 9월 중순 병원에서 사망했고, 서류상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형제가 있었습니다. 가정 내 불화로 자녀들은 어린 시절 시설로 보내졌고, 배우자와도 20년간 단절되어 가족이 해체된 상황이었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자녀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배우자와 누나가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일반적으로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된 유골은 화장 후 산골처리’가 되는데, 이를 봉안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요청을 한 이는 다름 아닌 무연고 사망자의 아내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편이었습니다.

 

ㄴ님의 무연고 장례에는 누나 내외 그리고 아내의 남편이 참석했습니다. 아내의 남편은 아내가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을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며 놀랐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이 사람(유골)을 그냥 (유택동산에) 뿌리게 둘 수가 없었어요. 할 수만 있다면 유골을 인수받아서 자연장으로 하고 싶기도 했어요.”

 

사랑하는 아내의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과 아이들을 걱정했던 한 사람의 소망은 결국 지자체의 결정을 바꿔 무연고 사망자는 화장 후 봉안이 되었습니다.

 

- 장례주관자 ‘가족 대신 장례’ 첫 사례

 

2018년 5월 광역단체 최초로 서울시 공영장례 ‘그리다’가 첫 시행된 이후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는 몇 번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 전용빈소가 생겼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될 경우 장례를 장제급여로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장 후 봉안과 산골 외에 신청자가 있을 경우 자연장이 가능해졌으며, 연고자가 있지만 경제적 이유, 단절 등의 이유로 시신위임 사례가 늘어나는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가족 대신 장례’가 가능하도록 조항이 추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9월 초 ㄷ님의 무연고 장례는 ‘가족 대신 장례’가 가능해진 첫 사례로 지자체에서 연고자가 아닌 이를 장례주관자로 지정해 치렀습니다.

 

ㄷ님은 지난 7월 말 70대 중반의 나이에 거주하시던 주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서류상에 연고자는 없어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었지만 2~30년간 각별한 관계를 이어온 지인들이 지자체에 공영장례를 신청하여 장례주관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무연고 업무를 맡은 지자체 담당자는 ‘가족 대신 장례’ 신청을 받은 후 나눔과나눔에 상담을 요청했고, ‘가족 대신 장례’에 필요한 서류들을 갖춰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공문을 통해 ‘장례주관자’를 지정해 ㄷ님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확정했습니다.

 

장례 당일 참석한 지인들은 직접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데에 감격해했고, 장례 내내 고인과의 행복한 추억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지인들은 ㄷ님과 사회운동을 함께하며 관계를 맺게 되었고, 30년이 넘도록 각별하게 서로의 안부를 챙겨왔지만 가족이 없는 ㄷ님의 장례를 항상 걱정해왔습니다. 새로 이사를 가게 된 곳이 임대아파트라 혼자 지낼 것을 걱정한 지인들은 결국 그런 상황이 고립사로 이어지게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ㄷ님이 사망한 후 지인들은 장례식장에 자신들의 비용으로 빈소를 차려 장례를 치렀고, 공영장례를 통해 장례주관자로 지정받아 고인의 유골을 마석 민주열사 묘역에 산골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기과를 졸업한 ㄷ님은 생전에 동주민센터에 찾아가 무의탁 어르신들의 가전제품을 수리해주는 일을 자주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는 이가 있을 경우에는 자신이 몸소 모금운동까지 해가며 도와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소유 없는 삶’을 지향했다며 지인들은 생전의 고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지인들은 ㄷ님의 유골을 받아 마석으로 향했습니다. 장례주관자 지정을 통한 ‘가족 대신 장례’의 첫 사례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오랜 단절, 경제적 어려움 등을 통해 연고자가 있음에도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는 사례가 이날의 장례를 계기로 점점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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