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Home   >   커뮤니티   >   복지뉴스

복지뉴스

‘경사로 맛집’ 말고 ‘진짜 맛집’을 찾아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계단 없이 경사로가 놓인 가게 입구 ⓒ김상희
맛있는 음식이 있는 가게가 맛집? NO! 계단이 없는 가게가 맛집!

나는 휠체어 사용자다. 그래서 지인과 만날 약속을 정하려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 ‘그 동네에 우리가 갈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보통은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이 앞서겠지만, 나는 이 질문부터 하고 약속 장소를 정한다. 인터넷 블로그에 맛집으로 소개된 식당이라도 우선은 문턱과 계단이 없는지부터 살피는 게 일상이다.

몇 년 전 지인이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불러내기에 우리는 블로그에 나온 맛집에 함께 가기로 했다. 블로그에 나온 사진상의 출입구에는 문턱이 없어서 지인과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맛집 입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확 열었더니 지옥의 계단이 우르르 펼쳐져 있었다. 맛집으로 소개한 이는 아마도 그 계단이 계단으로 안 보였을 것이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일종의 구조물쯤으로 여기며 휠체어 탄 사람도 자신이 소개한 맛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던 지인은 멋쩍어하며 한참이나 경사로가 있는 식당을 찾아 배회하다가 골목 모퉁이 허름한 밥집 한 곳을 발견하여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삼겹살은 익어가는데……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휠체어 탄 지인과 만나서 바퀴가 진입 가능한 식당을 찾으려니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호객행위를 하는 삼겹살 가게 주인이 우리 두 사람을 붙잡았다. 본인 식당에 들어갈 수 있으니 와서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장애상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신체 구조가 못 돼서 망설였는데 가게 주인은 본인이 도와주겠다며 계속 들어오라고 설득해왔다.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는 못 이긴 척하며 문턱이 없는 그 삼겹살 가게에 들어갔다.

맛이 있든 없든 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 안심하며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으니 상 위에 불판이 올라오고 날고기도 나왔는데 가게 주인은 고기만 불판에 올려주고 다른 손님들에게로 갔다. 이때부터 난감한 상황이 시작되었다. 고기는 익어가는데 뒤집을 수도 없고 익힌 고기를 서로의 접시에 놓아주는 것도 안간힘을 쏟아야 했다. 가게 주인은 의자만 빼주고 고기만 갖다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신체 기능을 최대한 살려서 삼겹살을 간신히 먹었다. 그리고 가게에서 나오며 ‘다시는 둘이서 삼겹살 가게는 오지 말자’ 다짐을 했었다.

이러한 상황을 자주 겪으면서 나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맛집을 점점 더 찾지 않게 되었다. 내게 ‘맛집’은 음식이 맛있는 가게가 아니라, 경사로가 있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가 진짜 맛집인 셈이다.

뻔한 거짓말, 무례한 가게

가끔 음식을 먹으러 가서는 모욕감을 느낄 때가 있다. 앞서 썼듯이 음식 맛집보다 경사로 맛집이 우선인 나에게 경사로가 설치된 가게는 무조건 단골이 되기 마련이다. 무심히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습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 동네에 자주 갈 일이 없더라도 접근권이 보장되는 가게는 유심히 봐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기억해두었다 찾아가곤 한다.

어느 여름날에도 평소와 같이 집 근처를 다니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마침 경사로가 되어 있는 맥줏집을 발견했다. 괜찮은 맥줏집인 듯해서 기억해두었다가 얼마 뒤 지인과 함께 갔다. 실내가 생각보다 좁았지만 의자 몇 개만 옆으로 비키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맥주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나는 이 맥줏집을 단골로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세 번째 방문으로 이어지자 맥줏집 가게 주인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왜 당황하는지는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그간 맥주를 마시러 와서 어떤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 주정을 옴팡지게 한 것도 아닌데 마치 ‘진상 손님’이 또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가게에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안에 자리가 텅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자리가 있는데 왜 못 들어가냐고 따지니 다 예약된 자리라고 뻔한 거짓말을 해댔다. 마치 어른들이 아이에게 과자를 뻔히 뒤에 숨겨놓고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지인이 공짜로 맥주를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든 적도 없는데 왜 거부당해야 하는지. 그 순간에는 화가 나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을 섞을수록 모욕감만 들어서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문득 깨달았다. 나는 식당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조금의 불편쯤이야 무뎌졌는데, 가게 주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좁은 공간에 전동휠체어가 들어와 의자 몇 개를 치우며 두 사람분의 공간을 차지하는 상황이 그들에게 불편이고, 영업 방해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받아들였고, 두 번째는 얼떨결에 들여보냈는데, 세 번째 오니까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맥줏집처럼 내가 식당에서 거부당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장애인 손님이 있으면 ‘미관상 안 좋다’거나,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를 당했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장사한다지만, 그들은 특정인만 손님으로 보는 색안경을 쓴 게 분명하다. 받고 싶은 손님과 받기 싫은 손님을 거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가게 입구에 설치된 또 다른 경사로 ⓒ김상희
청각장애와 언어장애의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

나에게는 정말 친한 아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와 술을 마시며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그 언니도 나도 전동휠체어 사용자라서 약속 장소를 잡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어쩌다 편의시설을 갖춘 식당을 발견하면 줄곧 그 식당에서만 만나곤 했다.

지금은 각자 나이가 들고 장애가 진행됨에 따라 만남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서로 바쁜 탓도 있지만, 만남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언니는 청각장애가 더 진행되고, 나도 컨디션에 따라 언어장애의 정도가 들쑥날쑥해졌기에 만나면 소통이 더 힘들어졌다.

우리가 만나려면 식당 입구에 경사로가 있고, 전동휠체어 두 대가 들어갈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청각장애와 언어장애의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내부가 시끌벅적하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조건을 가진 식당은 드물다. 중간 소통을 해줄 활동지원사와 동행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둘만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활동지원사가 동행한다면 그 만남은 셋 혹은 넷을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 관계의 친밀성 안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요즘은 차라리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편하다.

터무니없는 상상, 그러나 가장 현실적 대안

가끔 그 언니와 언젠가 둘이서만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둘 다 장애가 진행돼서 더 이상 혼자 다닐 수 없을 때의 상황을 그려보기도 했다. 만약 식당 중에 장애유형별 배려가 가능하고, 개인 활동지원사가 아니라 그 가게에 고용된 활동지원사가 상시 대기하는 서비스를 갖춘 공간이 있다면 우린 계속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상상이 누군가에게 터무니없을 수도 있지만, 언니와 나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현실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 아직도 수많은 가게에 자리한 높은 문턱과 계단을 마주하며 그저 출입만 할 수 있음에 안도해야만 한다. 많은 가게 주인들이 전동휠체어가 들어오면 자리를 차지해서 두 개 팔 걸 하나밖에 못 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비장애인 손님 중에 음식 하나 시켜놓고 몇 시간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적어도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면 인간을 협소하게 바라보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을 협소하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가게, 주인도 손님도 서로 공생하며 존중받는 가게.  만약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차별 없는 가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