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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로뎃대학교에서 ‘장애’를 다시 생각하다

『장애의 역사』와 함께하는 미국 탐방기②

갈로뎃대학교 구내 서점. 농인 교육부터 농인의 역사까지 삶의 모든 분야에서 농인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김승섭

갈로뎃대학교 구내 서점에는 평소 볼 수 없던 이야기들이 모여 있었다. 농인 교육부터 농인의 역사까지 삶의 모든 분야에서 농인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비장애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농인들이 만들어온 성공과 실패, 자부심과 차별의 경험이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갈로뎃에 다녀간 기념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었는데, 수어로 알파벳을 아름답게 디자인한 트럼프 카드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카드를 사고 싶은 사람은 점원이 보관하고 있으니 계산대에 말하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카드를 사고 싶었다. 문제가 있었다. 점원에게 ‘이 트럼프 카드를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곳은 수어로 교육하고 소통하는 농인 대학교인 갈로뎃이고 나는 수어를 알지 못했다. 직원도 농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이곳은 나처럼 수어를 알지 못하는 외부인도 방문할 수 있는 곳이고, 책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서점이니까. 점원은 청인이거나, 입술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독순술을 익힌 농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결국 나는 그가 독순술을 사용하지 않는 농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장애의 역사』에서 확인한 농인의 역사는 구어만을 언어로 여기고 수어를 말살시키려 했던 비장애중심주의 내지 구어주의와의 투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갈로뎃대학교 구내 서점. 농인 교육부터 농인의 역사까지 삶의 모든 분야에서 농인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김승섭
농인들의 기숙사 학교에서의 생활과 일반적인 삶은 남북 전쟁 이후에 부상한 구어주의로 인해 극적으로 바뀌었다. 구어주의는 농인이 수어를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읽고 입으로 말을 하는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미국의 초창기 농인 교육에서, 교사는 수어를 이용하고 가르쳤다. 그들은 수어가 “농인을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농인들은 교육기관들로 인해 활성화된 농인 공동체에서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등장한 알렉산더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이끌던 교육이론가 집단은 수어가 “교도소에 갇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어로 인해 농인이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다고 선언했다. “그 몸짓을 하는 사람은 지금도 앞으로도 이방인이 되어” 결코 진정한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애의 역사』 188쪽)

그렇게, 19세기 말부터 수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점차 커져갔다. 농인 학교에서 점차 수어 사용이 금지되기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80%의 농인 학생들이 수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육을 받았다. 농인은 수어라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구어를 온전히 구사하지 못하는 결함 있는 몸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되었다. 구어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사회에 적응하고자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부족한 인간으로 취급받았고, 농인들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했다.

그것은 농인들이 모여서 삶을 꾸려나가고 공부를 하는 농인 학교에서도 그러했다. 구어에 능숙하지 못한 농인은 농인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없었다. 농인 학교에서 농인 선생님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구어로 수업을 해야 하는 학교에서 농인 교사는 ‘능력있는 몸(able-bodiedness)’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기 농인 교사로 일하던 갈로뎃의 졸업생 제임스 윌리엄 소얼은 직장을 잃게 된다.

소얼은 앨라배마주 농인 학교에 다녔고, 1900년에 갈로뎃 대학을 졸업했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사로서의 성공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네브래스카주 농인 학교가 완전히 구화법만을 쓰도록 바뀌었을 때 교사직을 잃었다. “구어주의자(Oralist)”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는 “구어주의자, 당신의 길을 막고 있는 건 어린아이의 절망… 구어주의자여, 너의 고개를 돌려라, 당신 같은 이들의 죄를 위해 죽어간 가엾은 예수를 알고 있는가”라고 썼다. 소얼은 구어주의를 죄라고 여겼다. 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구어주의는 대략 1970년대까지 농인 교육의 지배적인 형태로 남았다. (190쪽)

이 같은 역사를 지닌 농인 공동체에서 구어주의는 농인 문화와 농인 교육을 말살시키는 폭력이었다. 그런 비장애중심주의라는 폭력 속에서 미국 유일의 농인 대학교로 살아남은 갈로뎃의 점원이 청인이거나 독순술을 배운 농인이라면 오히려 놀라울 일이었다. 아무래 생각해도 그가 내 구어를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았다. 잠시 트럼프 카드 구입을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하나는 손에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점원에게 영어로 소리 내어 물었다. “이 카드를 살 수 있나요?”

그 말을 하면서도, 구어로 묻는 내가 갈로뎃대학교의 문화를 무시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점원은 나를 보며 수어로 무엇인가를 말했는데, 그가 독순술을 하지 않는 농인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다가, 잽싸게 달려가서 핸드폰으로 전시된 카드 사진을 찍어 보여드렸다.


수어로 알파벳을 디자인한 트럼프 카드. “카드는 계산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승섭
점원은 웃으며 탁자 밑에 쌓여있던 트럼프 카드 세트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겨우 결제를 마치고 나서, 나는 민망한 마음에 황급히 서점을 떠났다. ‘농인 대학교인 갈로뎃에서 구어를 사용해서 죄송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 말을 수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언어 ‘장애’를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필자 소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장애의 역사』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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