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착용해도 ‘전용 방송장치’ 없어, 지하철 안내방송 못 들어
김윤덕 의원, 관련 개정안 발의했지만… 7개월째 국회 계류 중

장애인권단체 소속 청각장애인 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청각장애인, 고령자 등 보청기 사용자의 편의증진을 위한 법률개정 청원’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장애인권단체 소속 청각장애인 활동가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청각장애인, 고령자 등 보청기 사용자의 편의증진을 위한 법률개정 청원’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오병철 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병철 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보청기를 쓴다고 해서 완벽하게 들리는 게 아닙니다. 보청기 성능에 따라 소리만 키워지는 게 있고 데시벨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합니다. 지하철, 공연장 같이 사람 많은 데는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하철 타다가 어딘지 안 들려서 몇 정거장 지나서 내릴 때가 허다합니다.”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청각장애인 당사자)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등 장애인권단체 소속 청각장애인 100여 명이 22일 오전 11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시설에 보청기 이용자를 위한 청각보조 편의시설을 설치하라”라고 촉구하며 입법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작년 11월 30일,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발의했고 소관위원회의 심사도 마친 상태다.

오병철 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보청기를 착용하더라도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가 없으면 여러 소음에 묻혀 안내방송이 잘 들을 수 없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에 명시된 장애인 편의시설 목록 중에도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는 없다. 그래서 오 소장과 같은 청각장애인이 보청기를 착용해도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32만 명 중 23만 명(73.2%)이 보청기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의 음성·음향 정보 접근성은 매우 떨어지는 실정이다. 2019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8개 특별시·광역시 여객시설의 한국수어·통역서비스, 보청기 대여 제공률은 각각 1.3%, 0.6%로 매우 저조하다.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윤정기 씨가 입법청원 내용을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김철환 활동가가 옆에서 음성언어로 발언내용을 읽고 있다. 사진 하민지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윤정기 씨가 입법청원 내용을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김철환 활동가가 옆에서 음성언어로 발언내용을 읽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점자표기, 경사로 설치 등은 의무로 설치하라고 법에 명시돼 있는데 왜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포함되지 않았던 걸까.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22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그간 보청기는 개인 소지품 정도로만 취급돼 왔다. 그래서 보청기기 전용방송의 주파수나 보청기로 들을 수 있는 영역 등 가이드라인이 세워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윤덕 의원은 세 개의 법안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교통사업자가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에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를 의무로 설치하도록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 발의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가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를 의무로 설치하도록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안 발의 △청각장애인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차별받지 않도록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보청기 사양이 다양해,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와 호환이 안 되는 보청기가 있다는 것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의 국토교통위원회 심사소위에서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보청기기 전용 방송장치는 다수 보청기기와 호환이 어려운 측면을 고려하면 보편적인 장비에 포함될 수 없다’며 개정안에 반대의견을 냈다.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의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소위에서도 ‘호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김철환 활동가는 “보청기 이용자에 대한 정책이 만들어진 적이 없어서 나오는 목소리다. 청각장애인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 하나다.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정부 책임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표준을 세우든 가이드라인을 만들든 해야 한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권홍수 씨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김철환 활동가가 옆에서 음성언어로 발언내용을 읽고 있다. 사진 하민지

청각장애인 당사자인 권홍수 씨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김철환 활동가가 옆에서 음성언어로 발언내용을 읽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장애벽허물기 대표는 “보청기 이용자에 대한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 정부와 사회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작년 11월에 발의됐는데 7개월째인 지금도 통과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입법청원이 국회에서 신중히 검토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권홍수 청각장애인 당사자도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 씨는 “김윤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폐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입법청원에 참여했다. 용기 내서 국회에 청원하는 우리 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