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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에서 살다 죽은 ‘얼굴없는 사람들’의 장례식

  • 권익옹호팀  (cjbm97)
  • 2021-08-18 1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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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민지 기자    
  • 입력 2021.08.1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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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 추모하는 ‘합동 사회장’ 열려
    정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약속해놓고 파기
    “실패한 한국 복지제도로 인한 사회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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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천이 덮인 테이블 위에 초, 향, 국화꽃이 놓여 있다. 두 개의 영정사진 속에는 얼굴이 없다. 사진 하민지

서울 한복판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유명인이나 고위직 인사의 장례가 아니다. 영정에는 얼굴이 없다. 고인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살았다. 불평등과 차별은 이들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지다 사망했다. 장례식을 연 활동가들은 이를 ‘사회적 죽음’이라 불렀다.

얼굴 없는 영정 속 존재들은 사망하고 나서야 드러났다. 지난 7월 29일에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이 세계에 문을 두드렸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 살던 50대 홈리스 ㄱ 씨는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서대문구에 살던 30대 뇌병변 장애인 ㄴ 씨는 옥탑방에서 발견됐다. 이 밖에도 7~8월 최근 두 달간 강서구, 중랑구, 도봉구, 은평구, 동두천시 등 수많은 빈곤층의 존재가 죽음 이후에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대면업무가 줄어들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발굴과 모니터링이 부족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장애와 가난으로 인한 죽음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다. 송파 세 모녀, 국일고시원 참사, 인천 일가족, 방배동 모자 등 많은 죽음이 고유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이 더 심해졌을 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의 죽음은 늘 비슷한 모습이었다.

로즈마리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이 영정 앞에 헌화한 후 묵념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얼굴 없는 영정 앞에서 경찰은 이야기했다. “여러분은 지금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셔야 합니다. 장례가 집회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방역수칙 준수가 불가능한 곳, 정부가 외면한 복지 사각지대에 사는 쪽방주민, 홈리스 당사자 등은 17일 오후 2시, 서울시 중구 파이낸스 빌딩 앞에 마련된 합동 사회장에서 묵묵히 헌화했다.

-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고 싶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하랬더니 등급을 ‘정도’로 바꿨습니다. 가짜 폐지입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하랬더니 의료급여 기준은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정부는 다 폐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 폐지했으면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이 왜 죽습니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죽음은 왜 일어납니까? 이렇게 죽기 싫습니다. 이렇게 죽지 맙시다. 우리도 인간입니다.”

향을 피우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이같이 말하며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고 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을 파기하고 가난과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서 필요한만큼의 복지를 지원하는 듯 홍보하더니,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로 여전히 예산 맞춤형 복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아 수많은 빈곤층이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참다가 사망하고 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가관(假棺)이 하나 놓였다. 관을 덮은 검은 천에는‘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된 국가책임’, ‘부실한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이 이 관에 들어가야 한다”고 분노했다. 

사회장 사회를 보고 있는 김윤영 빈사연 활동가. 김 활동가 뒤로 ‘여기 존엄한 삶이 무너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라고 적힌 문구가 보인다. 사진 하민지

장례식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는 늘 예산이 부족하다 핑계 대지만 한국은 돈 없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GDP(국내 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된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 등 복지가 더욱더 빠르게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에 사는 빈곤층의 상태도 열악하다. 김정호 동자동사랑방 이사장은 “쪽방주민이 고독하게 돌아가시는데 그마저도 빨리 발견되지 않는다. 냄새나고 벌레가 기어 나와서 문 따고 들어가 보면 돌아가신 상태다. 한여름에는 5~6일만 지나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며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 날마다 술에 의지한다. 그러다 말로 다 못 할 정도로 힘들게 돌아가신다”고 증언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인간다운 삶과 죽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최 회장은 “죽으면 다 똑같다더니 죽음에도 계급이 있었다. 우리는 장애인이고 가난하지만 고통받으며 살고 싶지 않고 고통 속에 죽고 싶지 않다. 불이 나서 타 죽고 싶지 않고, 방바닥에 물이 새서 얼어 죽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2005년 12월 경남 함안에서 한 장애인이 혹한에 터진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물에 잠겨 동사하고, 2014년 4월에는 집에 홀로 있던 사이 발생한 화재로 송국현이 불타 죽었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이들의 사회적 죽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었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관. 검은 천이 씌워져 있다. 천에는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된 국가책임’, ‘부실한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이날 장례식을 연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합동사회장 장례위원회’는 2박 3일 장례기간을 엄수하며 릴레이 발언과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회장 종료 후에는 추모위원회 명단과 추모메시지, 불평등 해결을 요구하는 서한 등을 모아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현재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주자들에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답을 받는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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