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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애인 가족’ 서사에서 가려졌던 존재, 비장애형제들의 목소리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지음

서영의 오빠는 발달장애인이다. 엄마는 오빠의 돌봄만으로도 벅찼다. 사람들은 서영에게 “그러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해야 한다”라는 말을 아주 쉽게 했다. 반면 서영의 조그만 실수에는 “너는 멀쩡한 애가 왜 그러니?”라고 타박했다. 서영에게 ‘오빠가 저러니까 나까지 속 썩이면 안 돼. 내가 잘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오랜 시간 서영은 ‘서영으로’ 살지 못했다. 서영은 어린 시절 사랑을 갈구할 때는 밀쳐냈던 엄마가 성인이 된 자신에게 ‘다정다감하지 않다’고 핀잔을 주니 무척 혼란스러웠다. “여태껏 오로지 오빠에게만 관심을 쏟아놓고서 이제 와서 소원해진 모녀 관계를 모두 서영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운 것이다. 엄마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불쌍하다는 마음 또한 지울 수 없다. 현실적으로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 쏟을 여력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는 말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서 엄마가 없으면 그때는 네가 엄마를 대신해야 해. 집안일도 살피고 오빠도 잘 돌봐야 해. 알았지?” 서영은 엄마가 자신과 오빠를 버리고 떠날까 봐 무서웠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다.

“내외부의 기대와 압박, 엄마를 대신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 그리고 애정결핍”은 서영을 병들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는 잘 되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세 시간도 자지 못할 만큼 정신적 압박과 우울이 심해졌을 때에야 서영은 어렵게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나마 하나 남은 멀쩡한 딸마저’ 아프다는 것을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시간 속에서 서영은 비장애형제모임 ‘나는’을 만났다. 이후 쉽지 않았지만 가족으로부터 서서히 독립했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지음, 한울림스페셜
 
- 비장애형제들이 살기 위해 만든 자조모임 ‘나는’

이제까지 ‘장애인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인공은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였다. 부모의 장애인 자녀 양육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는 전형적인 서사다. 그 이야기 속에서 비장애형제는 ‘4인 가족’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한 존재 정도로만 그려졌을 뿐, 많은 경우 언급되지 않았다. 그가 가족 내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는지 우리 사회는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은 채, ‘장애형제를 돌보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고정된 역할을 그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장애에 대한 돌봄이 가족에게 가중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비장애형제는 부모(정확히는 엄마)만큼이나 강도 높은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 그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돌보며(주로 장애형제, 때로는 엄마까지) 비장애형제는 ‘이르게 철든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부모가 떠맡았던 장애에 대한 돌봄은 대를 이어 비장애형제에게 물려지기도 한다.

온 가족이 ‘장애형제’에 매달리는 만큼 장애형제는 가족 내에서 큰 존재감을 갖지만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외부에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자폐성 장애인을 동생으로 둔 소진은 “동생이 장애인이란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게 네 약점이 될 거야”라는 엄마의 오랜 주문에 그 누구에게도 동생의 존재를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동생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할 수 없었던 소진은 성장 시기에 맞춰 ‘평균적인 남자 동생’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친구들 이야기 속 소진의 남동생은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관계를 거짓으로 꾸민다는 것은 결국 내 존재를 거짓으로 꾸민다는 것과 다름없기에, 가짜를 진짜인 척 연기하는 일에 소진은 숨이 막혔다.

반면 태은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발달장애 동생이 있다”는 말을 가장 먼저 했다. 그럴 때면 ‘착하고 공부 잘하고 잘 자란 아이’로 평가되었고, ‘장애형제를 위해 사회복지학과를 택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비장애형제라는 정체성은 남들과 차이점을 두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 외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물음이 들었던 어느 날, 태은은 자신을 설명할 단어가 없음을 깨달았다.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으나 세상 어디에도 ‘비장애형제 모임’은 없었다. 태은은 자신이 살기 위해, 2016년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을 만들었다.

-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가족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비장애형제들에게 장애형제의 존재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나를 규정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비장애형제 ‘나는’에서 활동하는 여섯 명의 목소리가 담긴 책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한울림스페셜)는 ‘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가족이라는 오래된 관계에서 누적된 갈등과 상처를 응시하고 풀어나가는 성장 서사는 20~30대 청년들의 보편 서사를 닮았다. 그러나 발화자가 정신적 장애(발달장애/정신장애)를 형제로 둔 비장애형제라는 독특성은 이 이야기의 고유성을 담지한다.

또한, 책은 ‘장애인 가족’에 관한 이야기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엄마와 딸, 즉 ‘여성’인 점도 흥미롭다. 비장애형제로서 말하기를 시도하는 이들이 딸이고, 이들과 갈등을 겪는 대상자는 엄마다. 이는 가족 내 주 양육자가 ‘엄마’라는 현실에서 기인하며, 형제 내에서도 장애형제에 대한 돌봄을 수행하는 이가 주로 딸인 현실의 반영인 듯하다. 장애인 가족 내에서 비장애형제의 성별(아들/딸), 어머니/여성의 역할, 아버지/남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가정 내에 어떻게 침투하여 가족 관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는 미시사라는 점이다. 가족 내 떠맡겨진 장애자녀 돌봄으로 인해 엄마의 관심은 장애자녀에게 집중되고, 그로 인해 비장애형제는 애정결핍과 관계의 소외를 경험한다. 시혜와 동정의 시선이 동반되는 ‘장애’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함구하거나 쉽게 드러내기 어렵게 만든다. 그로 인해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정상가족’에서는 조금 빗겨 난 고민들을 하게 되지만, 비장애형제의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전무하다. 이것이 삶을 고립시킨다. 해수는 상견례를 앞두고 남자 쪽 가족이 자신의 동생(자폐성장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청년이 된 비장애형제들이 ‘살기 위해’ 만든 ‘나는’은 분명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이지만, ‘나는’에 참여하며 겪었던 내적 갈등에 대한 고민들은 이 모임이 요술방망이와 같은 만병통치약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다만, 외부에서 요구되었던 역할을 벗고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 그것을 독려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낸다. 그 전과는 다른 삶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며 그 길을 조금 덜 외롭게 갈 수 있다고 말이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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