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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사회에서 비혼 장애여성으로 살아내기 / 김상희

[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 집 안 곳곳이 고장 나고 있지만

어제 한 시사 방송에서 스토커 관련 보도를 보게 되었다.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1년간 스토커 해서 결국 살인까지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신고를 통해 경찰에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하고 응급 시 호출하는 스마트워치까지 받았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또 다른 한 BJ 여성은 현재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집으로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원치 않은 선물공세 등을 하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접근금지 명령 기간도 2개월밖에 안 되고, 설령 명령을 어겨도 솜방망이 같은 처벌로 인해 금방 풀려나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에서 받은 스마트 워치는 기능 저하로 정확한 위치를 못 잡아내어 엉뚱한 곳으로 출동해서 범죄가 일어난 후에야 도착한단다. 이런 사건을 종종 접할 때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듯하다. 이 방송을 보면서 최근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각종 공구들이 담긴 함. 사진 언스플래시

몇 달째 우리 집 변기 밑 부분(시멘트로 마감한 곳)이 깨져 있다. 좁은 화장실 공간에서 샤워 휠체어를 사용하며 이동하는 도중에 변기와 자주 부딪히게 되면서 충격으로 밑 부분이 자주 깨진다. 얼른 사람을 불러서 고쳐야 하는 것도 아는데, 그게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는다. 관련 업체에 연락해서 고치면 될 것을 몇 달이 지나도록 못 고치는 내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번 일만 그런 건 아니다. 현관 센서등이 고장 났을 때도 그냥 어둠을 참는 것으로 대처했다. 그러다 위험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탈부착 센서등을 따로 구매해 한쪽 벽면에 붙이는 임시방편으로 해결했다.

혼자 살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는 습관적으로 집에 고장이 난 게 있으면 점점 더 오랫동안 방치해 놓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오래된 집에 살수록 주거 관리는 시시때때로 필요하고 점검도 수시로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활동지원사 분들의 도전 의식 혹은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어려워한다. 가끔 화장실 전등이 나갈 때면 조심스레 활동지원사 분에게 부탁을 하는데 “화장실 전등을 한 번도 갈아본 적이 없다”는 말로 되돌아올 때가 많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도전하겠다며 해 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등을 교체하는 동안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불편함을 피하려면 전등 교체가 가능한 사람을 찾아 비용을 지불하고 요청하는 게 가장 깔끔하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 낯선 이의 방문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나는 자립하고 난 뒤부터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게 싫다. 더구나 집수리해 줄 사람을 찾게 되면 대부분 중년 남성이다. 그래서 더 회피하고 싶어진다. 잘 모르는 사람이 집에 방문해서 나의 살림살이를 보고 가는 게 왠지 걸린다. 조금만 관심 있게 집 안을 살펴본다면 나 혼자 산다는 게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나친 우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방어를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낯선 이의 방문은 때론 공포 영화를 그대로 체험하는 것처럼 피해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가 없게 만든다. 심상치 않게 들려오는 혼자 사는 여성을 향한 폭력 이슈는 갈수록 나를 겁쟁이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이런 불안감을 해결할 장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보수적인 태도로 일상을 꾸리는 것뿐이다.

꽤 오랫동안 지켜온 나만의 독립 원칙이 있었다. 장애가 지금보다 덜 진행되기 전에는 온라인 배달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혼자 가게 가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직원과 대면하기 어려워도 직접 구입을 고집했다. 구입한 물건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 신념과 같은 고집이 꺾인 것은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전처럼 물건을 들어 올릴 힘도 빠지고 퇴근길에 어딜 들러서 장을 봐 오는 것이 점차 불가능해지면서 온라인 구매의 편리함을 알아버렸다. 이제는 웬만하면 거의 모든 용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온라인 구매를 하면서도, 물건은 꼭 1층에서 받아왔다. 내가 사는 곳(구체적인 호수)을 노출하는 게 꺼림칙했다. 이건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오면서 잦은 음식 배달로 인해 ‘절대 문 앞까지는 배달 안 시키겠다’고 세웠던 원칙은 어느 틈인가 스르륵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음식을 시키면 문 앞에 두고 가라는 메모는 꼭 남겨 놓는다. 배달하시는 분과 되도록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여성은 문을 열어줘야 할 때면, 미리 사놓은 남성 신발을 신발장에 일부러 내놓기도 한단다. 이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겐 과도한 피해망상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앞서 방송에서 나왔다시피 혼자 사는 여성의 주거 침입 범죄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이와 같은 방법이 여성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대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보호망을 치지 않으면 가장 편안할 집이 순식간에 범죄 현장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두운 복도. 사진 언스플래시

- 제도 밖의 제도가 필요할 때

흔히 사람들은 중증장애인이 자립하면 주거와 소득, 그리고 활동지원서비스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젠더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어떠한 부분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이젠 장애와 관련해선 활동지원서비스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거 같다. 활동지원서비스로 담아낼 수 없는 여러 공백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결국엔 ‘활동지원서비스로 해결하라’고 한다.

어느덧 독립한 지 17년이 지났다. 이제 웬만한 일은 코웃음 치고 넘길 정도로 경험의 역사는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경험이 아무리 쌓여도 해결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특히 장애여성 1인 가구로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에 부딪힌다. 그 일이 제도 밖의 일이라면 나는 한참 고민을 한다. 누구한테 어떻게 부탁할 것인가에 대해 머릿속에 틈이 없을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젠 다른 고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자립한 1인 가구의 장애인에게 어떤 지원과 정책이 필요한지 누군가에게 물음을 당하고 싶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출처 : 비마이너(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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